coji 2004
 



 색으로 말할수 없어요

2014-07-24 08:38:08, Hit : 298

작성자 : coji2004
6월 1일

페북으로 알게된 님에게 한달에 한번이라도 글을 쓰겠다고 약속을 했었습니다.

색채를 가르치는 저는 매일 수업에 가정일에 번역에 통역에 뭐 잡일 등등에 의해 아니 이게 다 핑게인지 모르겠습니다만

4월 봄에 대한 짧은 글을 올려두고 5월을 날려 버렸습니다.

4월 세월호 이후  가까이  내 신변에서 일어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 또한 슬픔 속에 빠진 상태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어느 순간 색이 눈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색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건 빛이 존재하여야 하고 그리고 대상물이 있어야 하며 우리 신체의 빛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인 눈이  필요합니다.  눈도 있고 이세상 너무 많은 대상물이 있고 빛에너지가 있는데 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까요

아니 보입니다 그런데 색을 느낄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마음에 눈이 있다는 것의 증거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4월 5월은 너무나 자연적으로 눈이 부실정도로 사랑스러운 색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것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색채공부를 하고 색채를 전문으로 한다는 저

1990년대 한국에서 색채의 붐이 일어납니다. 색채 학회며 여러가지 색채 이벤트에 홍익대에서는 색채학과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여러대학에서 색채에 관련된 학과가 탄생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뭐든지 성장이 참 빠릅니다. 학과가 생기고 학회가 한두개 생기며 파벌이 생기고 자격증이 생겨나고

그런데 무슨 주사를 맞은 것처럼 성장하던 것이 어느 정도 자라니 너 알아서 해 라는 듯 성장할수 있는 영양분을  멈쳐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나라에서는 색채전문가도 많이 탄생했다고 전 생각합니다.

홍익대에서는 박사과정이 생겨 색채학 박사분들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세월호문제로 우리는 노랑색 띠를 많이 봅니다.

전 솔직히 노랑색 띠를 올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색채를 전공을 한 사람으로 더욱더 노랑색 띠를 달아 자기 표현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전문가이기에 더욱 더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색으로 먼저 자기를 표현 할수가 없었던 것은 제 자신이 어떤 색으로 분리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랑색의 모두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랑색 띠를 달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 또한 모든 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색채전문가로써  저는 노랑색 한색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색채가 가지고 있는 독자가치(own value)에 정치적인 면을 넣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대에서는 검은 색에서 흰색의 사이에 색이 존재한다는 설이 있었습니다.

15세기 이탈리아 건축가이며 예술 이론가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72)도 4원색이 흰색과 검정이 함께 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뉴톤의 광학에 의해 우리는 백색광에는 단색광의 합성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단독적인 한색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모두 하나하나 자기의 색이 모여 멋진 단색광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저는

색채를 공부하는 사람일수록 한색을 주장하기 보다는

모든 색을 포함하고 있는 단색광이 되고자 합니다.

단색광이 되기 전 자기의 개성을 어떻게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조화와 부조화가 항상 존재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유사조화로만  이루어져도 즐겁지 않을 것이고

모든 것이 대조칼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너무 긴장의 연속이라  피곤할지 모릅니다.


하여간 둘러싸인 색이 주변 색에 가까워져 보이는 현상인 「동화효과」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색채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남자하면 파란색 여자하면 빨간색이라는 상징성을 색에서
일본의 색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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